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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리키, 로저 르윈 [제6의 멸종]발췌(2)


"눈에 보이는 자연만이 전부는 아니다. 생태 군집 내에는 반직관적인, 따라서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동력이 작용하고 있다. 군집은 항상 변화하고 있으며 얼핏 목적을 갖고 스스로 진보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연'과 '역사'가 진화에서 커다란 역할을 담당한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이러한 역학을 드러내고 시간의 흐름을 통한 변화의 중요성을 보여주며, 장차 보호주의자들에게 유익함이 될 실제 생태계의 이야기로 이 장을 맺으려 한다. 보츠와나 북부의 초베 국립공원은 아프리카 남부와 동부에 있는 여러 생태계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그곳에는 많은 대형 초식 동물들 기린, 물소, 코끼리, 얼룩말, 누, 임팔라 등이 있으며 이들 중 일부는 이주하며 살아간다. 사자, 하이에나, 야생개, 자칼은 풍부한 육식 동물군을 이룬다. 초원에 아카시아 숲이 듬성듬성 자리잡은 모자이크 서식처는 다양한 새와 곤충 종을 숨겨준다. 요컨대 초베 공원은 사람들이 '야생 동물'이란 단어를 들을 때 떠올리는 바로 그런 종류의 풍부한 종 다양성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원 관리자들은 이 다양성을 계속해서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도 해야 하지만 원래대로 존재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식을 더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아카시아 숲이 코끼리들에 의해 마구 파괴되어 가는데도 새로운 나무는 전혀 자라지 않고 있다. 
숲이 줄어들어 단지 옛 자취로 남게 되면 관리자들은 자신이 다양성의 보존에 실패하게 되리라고 믿는다. 그들은 모든 것이 지금처럼 유지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유지하는 것은 생태학적으로 잘못이다. 뿐만 아니라 유지 자체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 공원의 생태 역사를 들여다보면 왜 그런지를 알 수 있다.
  사부티 수로는 주변 지역의 표면수 공급원으로 매우 중요하다. 물이 가득 찰 경우, 이 수로는 앙골라에서부터 린얀티 늪지를 경유하여 사부티 소택지 지금은 초원으로 변했다로 흘러들어간다. 1800 년대 말에 가득 찼던 이 수로는 1900 년대로 접어들면서 마르기 시작했다. 그러기 1950 년대 중반까지 계속 말라있는 상태였다. 그후 물이 좀 차는가 싶더니 1982 년에 다시 말라 지금까지 계속 그 상태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 사부티 수로가 마르고 난 직후, 그곳에서 우역(역주: 소 전염병. 반추동물의 급성 바이러스 병)이 창궐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오늘날 아카시아 숲이 탄생하는 데 산파 역할을 해냈다.
  물의 부족은 코끼리가 물을 찾아 사방을 헤매도록 했으며(사냥도 코끼리의 숫자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우역이라는 풍토병은 유제류 개체군에 치명타를 가했다. 그 결과 이 지역에서의 방목 압력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아카시아 묘목 (많은 동물들이 좋아하는 먹이이다)은 나무로 완전히 자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즈음 코끼리의 유제류가 다시 회복되었고 광대한 아카시아 숲은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이 지역에서 상세한 연구를 수행했던 브라이언 월커Walker의 말을 들어보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수많은 코끼리와 광대한 아카시아 숲의 공존은 시간상 매우 한정된 장면을 나타낸다. 이 공존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유는 아주 분명하다. 이 지역에서 코끼리와 유제류 무리가 번성하는 한 아카시아 묘목은 다 자랄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이다. 숲이 다시 무성해지려면 동물들이 제거되어야만 할 것이다. 월커는 "문제는 관리자들과 관광객들이 사실상 동물을 볼 수 없게 되는 10 년에서 15 년 동안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물론 오늘날 초베 공원의 종 다양성은 자연적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는 실질적인 환경 변화에 의해 생겨난 결과이다.
  공원 관리자들은 흔히 그러한 변화를 거스른다. 적어도 가치있는 무언가가 뚜렷이 사라지는 것을 볼 때 그들은 그렇게 한다. 생태계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모두 일정한 혼란 상태에 있으며, 어느 시점에서 일부 개체군이 감소하는 반면 또 다른 개체군은 번성할 수도 있다. 일정한 변화는 종 다양성의 원동력이 되므로 변화 역시 대단히 중요하다. 월커는 "보호주의자들은 특정한 식물이나 동물 종의 존속을 걱정하는 데 쏟는 시간을 좀 줄일 필요가 있다. 대신 이제는 생태계 과정의 본질과 다양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
  군집 조립의 카오스적인 측면이나 역학을 이해함으로써 생태계의 본질에 대한 안목을 갖춘다면 월커가 우리에게 권하고 있는 내용이 옳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무릇 인간만사가 다 그러하듯 수십 년에 걸쳐 일어나는 과정을 관리하기란 참으로 어렵다. 그리고 줄어드는 숲,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수수방관하며 지켜보기를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 그렇게 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



"틸만과 그의 동료들은 "멸종은 서식처가 동강난 뒤 그 이후 세대에서 일어난다. 따라서 멸종은 미래에 우리가 치러야 할 빚이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는 5백 년도 훨씬 넘은 그 옛날, 오래 전에 있었던 서식처 파괴의 영향이 지금까지도 세계 도처에서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저지르는 환경 파괴의 악영향은 이후 5백년이나 우리 자손의 자손에게 찾아갈 것이다. 결국 우리는 멸종의 빚을 쌓고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서식처의 파괴와 단편화가 하와이 제도가 겪었던 멸종 파동에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착지를 찾아 단독으로 이동하는 일은 좀처럼 없다. 고양이, 개, 돼지, 염소와 같은 동물은 일부러 데려가며 쥐처럼 무임승차한 동물을 무심결에 동반하는 경우도 있다. 이전까지 포유류가 없었던 섬 생태계에 이 생물들이 들어오면서 경쟁이나 약탈 등 일대 혼란이 벌어진다. 연한 잎을 뜯어먹는 데 명수인 염소는 고유종을 과다하게 먹어치워 점차 자연 경관을 헐벗게 만든다.
  2백 년 전 갈라파고스 군도의 여러 섬에 도입된 염소는 일부 섬을 사실상 벌거벗은 바위로 만들어버렸다. 포식자는 한 군집의 생물들이 위험을 느낄 정도로 크거나 공격적일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들은 훨씬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다. 사람과 동반한 포식자 무리 가운데 쥐가 멸종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크게 놀랄지도 모른다. 잡식성인 쥐는 조류와 파충류의 알과 어린 새끼를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생물 순환의 파괴를 불러일으킨다.
  알다시피 생태 군집은 그저 같은 지역에 우연히 함께 살게 된 종들의 집합이 아니다. 그들은 복잡한 먹이 연쇄를 통해 약하긴 하지만 어느 정도 상호 작용을 한다. 그 결과 한 종의 멸종은 군집 전체에 파장을 미쳐 더 많은 멸종을 야기시킨다. 일례로, 하와이 제도의 많은 식물 종들은 구부러진 길다란 부리에 꽃의 수분을 의존하던 꿀새가 사라짐으로써 그만 멸종 직전에 놓여 있다. 이것은 직접적인 의존의 한 보기이나 의존의 사슬이 다소 간접적일 수도 있다. 대형 초식 동물들은 종종 그보다 작은 초식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 큰 종의 활동 결과로 서식처가 트이기 때문이다.
  이들 대형 초식 동물에 의한 파괴의 영향으로 그 서식처 식물 사이에 다양성과 생산성이 촉진된다. 이러한 '쐐기돌 초식 동물'이 제거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나탈의 훌루훌루웨 야생동물보호구에서 코끼리가 사라졌을 때를 상기해 보면 된다. 1세기도 지나지 않아 3종의 영양이 국부적으로 멸종했고 누와 워터벅 개체군까지 감소했다. 코끼리가 사라졌을 때 그보다 작은 초식 동물이 살아가면서 서식처를 만들던 그들의 습성 또한 사라진 것이다.
  생태 군집은 복잡한 '계'이다. 복잡성이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는 군집의 파괴가 자연계에 미치는 영향에서 보다 뚜렷이 나타난다. 이제는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러한 파괴의 주요 원인이 인간의 존재에 의해 구체화되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생태 파괴의 정도, 특히 지난 수천 년 동안 대양 섬에서 일어난 생태 파괴의 규모는 최근에서야 인식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신이 번쩍 드는 확고한 깨달음이었다. 세계의 많은 부분이 생태학자들이 상상하는 모습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다시 말해 온전한 자연계의 구성을 보여주는 원시 상태가 
아니라우리 사람 종이 아주 최근까지 진화해 온 전체 생태계의 치명적인 충격을 가했다는 사실로부터 더 이상 벗어날 수 없게 된 것이다.
  환경을 크게 남용한다고 해서 굳이 대량 벌목용 기계를 쓸 필요는 없다. 원시 사회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숱한 기록을 남김으로써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인간은 스토스 올슨이 '지구 역사상 가장 신속하고 가장 심각한 생물학적 재앙의 하나'라고 부르는 일을 마구 몰아붙였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에서의 대량 절멸까지 덧붙이면 호모 사피엔스는 멸종의 원인으로서 참으로 긴 역사를 갖춘 셈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역사를 뒤로 한 채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나는 우리 종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위협하고 있는지 그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 다룰 것이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우리가 코끼리가 같은 '거대한 개별 종의 손실'과 '전체적인 영향', 이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심각한 파괴에 직면해 있음을 확신한다. 나는 지금까지 과거에 인간이 미친 영향을 이야기해 왔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 엄습하고 있는 사태에 대한 변명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 그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초기 사회는 그러지 못했다. 정확한 역사적 조망을 통해 현재의 양식을 고찰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



"새로운 1천 년이 인간의 손에 의해 흩뿌려진 훌륭한 한 종의 피의 역사로 시작된다면 이것은 그야말로 인간의 무책임과 탐욕에 대한 구역질나는 증언이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가능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내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이다. 다행히 멸종을 향한 거센 돌진은 어느 정도 멈추었고 거기에는 내 역할도 적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하고 있을 수는 없다. 대량 살육을 중단시킨 것은 어렵고 불확실한 앞으로의 여정을 향한 첫 걸음일 뿐이다.
우리 자손들의 자손, 다시 그들의 자손에게 야생 코끼리가 주는 경외감(오늘날 우리가 그들에게 느끼는 것처럼)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어떨지는 순전히 이 여정이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느냐에 달려 있다"

"아프리카코끼리는 5백만 년 전부터 2백만 년 전 사이, 플라이오세 어느 시기에 아프리카 대륙의 울창한 삼림에서 처음 진화했다. 현대 코끼리의 직접적인 조상이 호모속 현대인을 유일한 후손으로 둔의 첫 출현과 거의 동시에 진화했다는 사실은 다소 아이러니컬하다. 홍적세 기간 동안 아프리카에서는 여러 장비류 종이 멸종, 아마도 환경의 변화 탓인 듯하다되었으며 홍적세가 끝날 무렵인 1만 년 전에는 매머드와 매스토돈이 종말을 고했다.
  앞장에서 살펴본 바 그대로 이들은 어쩌면 사람의 손에 의해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 지금은 아프리카코끼리와 인도코끼리만이 장비목의 유인한 대표로 남게 되었다. 사람과 코끼리는 적어도 다음의 관점에서는 거의 동등한 관계를 가지도록 운명지워졌다. 즉, 이 둘은 대략 같은 시기에 진화의 시련으로부터 출현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 코끼리는 어디에 분포하고 있는가. 우리는 이들의 영토 범위를 인도와 서남 아시아의 일부 지역,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인구가 점점 영토를 잠식함으로써 코끼리들이 곤경에 처해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저 현대 세계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린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기만 해도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 곧 드러난다. 불과 수천 년 전만 해도 인도코끼리는 중국과 중동에까지 펼쳐진 아시아 대부분 지역의 생태계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누렸다. 그리고 아프리카코끼리는 지금처럼 남부 아프리카에 작은 개체군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 걸쳐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의 걷잡을 수 없는 '인구 팽창'과 '상아에 대한 갈망'이라는 두 힘이 치명적으로 결합된 결과 이들은 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인간은 오랫동안 상아의 아름다움에 그리고 상상 속의 신비한 힘에매혹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조각상 독일의 포겔하트에서 나온 작은 말의 입상은 매머드의 엄니, 즉 상아를 파서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중동과 이집트, 크레타, 그리스에 이르는 초기 문명의 일부로서 뚜렷이 억제할 수 없는 표현 형태의 시작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기질을 고도의 예술로 발전시킨 것은 로마인들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상아로 중요한 상징을 지닌 작은 입상을 만들었다.
  이들은 상아로 실용적인 대상( 예컨대 묘지와 같은)을 장식했으며 커다란 상과 가구에 멋으로 상아를 놓아두었다. 또 상아 타일로 방에 선을 둘렀으며 심지어 화폐로 쓰기도 했다. 상아의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하자 코끼리 개체군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기원전 2세기 경 아프리카 북부와 아시아 동부의 분포 지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코끼리들이 살해되었다. 로마인들은 상아에 대한 자신들의 열망이 상아를 지닌 동물들의 감소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 분명하다.
  더글러스 채드웍은 그의 명저 '코끼리의 운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현대 사회와 비교해서 로마인들은 멀리 떨어진 지역의 야생 동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거의 알지 못했다. 상아의 남획으로 코끼리가 사라져가는 동안 플리니우스는 여전히 코끼리의 주된 천적을 용이라고 쓰고 있었다." 실제로 다른 혈통의 용(역주: 인간을 가리킴)이 나라 밖에서 이 거대한 후피동물을 향해 치명적인 불기둥을 내뿜고 있었다. 당시 여타 앞선 문명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 제국 역시 또 다른 방식으로 코끼리를 이용했다. 막강한 코끼리의 힘은 건축과 수송에 쓰였으며 전쟁에서 강력한 무기로 대용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용도는 상아 수렵에 비하면 코끼리 개체군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서식처 파괴면에서도 영향력이 크기 않았다. 한때 유라시아에 광범위하게 뻗어 있던 삼림 지대는 조각조각 동강나고 개간되었다. 다투어 출현하는 인간의 문명을 유지하기 위해 목재 수요가 끊이지 않았고, 이 때문에 생태적인 상황도 엄청나게 바뀐 것이다. 오늘날 대다수 유라시아 지역과 이보다 더 최근의 아메리카 대륙에는 현대 산업 사회의 경제 발전이 빚어낸 결과물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그 본질상 인공적이며 인위적이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야생 동물 서식처가 어떻게 유지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때 이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것이다."


"코끼리가 나무를 잘라내거나 어린 식물을 뿌리째 뽑는 광경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 파괴적인 힘에 깊은 인상을 받게 마련이다. 내가 몇 년 전의 암보셀리를 묘사했던 장면에서도 코끼리의 힘은 대량 파괴를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생물학자들은 코끼리의 파괴력을 다른 측면, 즉 창조적인 힘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이것은 단순한 생각의 전환같지만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코끼리가 삼림의 나무를 파괴한 결과 관목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이 창조된다. 또 사바나 관목 지대에서의 관목 파괴는 풀이 자라날 공간을 마련해 준다.
  울창한 삼림을 방문한 사람이면 누구나 아름드리 나무들이 치솟아 있는 그 웅장함에 감명을 받게 마련이다. 이 나무들에는 각종 착생 식물들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 후 다시 둘러보면 주위는 온통 침묵뿐이다. 기묘한 정적이 그제서야 의식을 뚫고 들어오기 시작한다. 큰 동물들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들은 거기에 없거나 있다 해도 고작 몇 종류밖에 되지 않는다. 숲과 초원이 펼쳐져 있건만 정작 풀과 나뭇잎을 뜯어먹는 동물은 없다.
  이제 생물학자들은 다른 종이 번성할 수 있는 서식처를 창조하는 주인공이 바로 코끼리임을 깨닫고 있다. 새로 형성된 관목 지대에는 연한 잎을 먹는 동물들이, 새로 형성된 초원에는 풀을 뜯는 동물 종이 살아가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역할을 하는 종을 '쐐기돌 초식 동물'이라 부른다. 쐐기돌이 빠지면 아치가 무너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쐐기돌 초식 동물이 멸종하면 생태계 역시 붕괴할 것이다.
  위차터스랜드대학(요하네스버그에 있다)의 생물학자 노먼 오웬 스미스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과거에 이러한 대규모 붕괴가 이미 발생했었다고 주장한다. 오웬 스미스는 1 만 년 전 홍적세 말에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형 초식 동물이 멸종한 사실에 주목했다. 그는 당시 멸종의 원인은 인간의 약탈 때문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말한다. 이때 사냥꾼들의 관심은 매스토돈과 곰포테륨에 쏠려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오웬 스미스는 사냥에 의해 희생되지 않았을 법한 다수의 작은 포유류와 조류 종들 역시 멸종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대형 초식 동물이 절멸하면서 탁 트였던 숲 속의 빈터는 다시 막혔고 관목 지대는 삼림으로 바뀌었으며 다양함을 자랑하던 초원은 획일적이고 지루한 초원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식생의 변화는 화석상의 꽃가루 기록에서 구별된다. 화석 기록은 통해 우리는 이러한 변화가 작은 초식 동물이 살 수 있는 서식처를 한정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결국 종의 절멸로 이어졌을 것이다. 오늘날 코끼리가 멸종한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도 부분적으로 이와 유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코끼리가 사라지면 풀이나 연한 잎을 뜯어먹는 동물들의 서식처는 풍부함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훨씬 적은 종만을 지탱할 수 있게 된다. 그 뚜렷한 예로 암보셀리의 북부 지역을 들 수 있다. 울창한 관목이 그 일대에 똑같이 펼쳐져 있는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확하다. 만일 끔찍하게도 통찰력의 부족이나 의지의 결여로 코끼리가 멸종한다면 더 많은 종이 그 뒤를 따라 진화의 망각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쐐기돌 초식 동물로서 코끼리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그동안 상아 교역의 장래나 추려내기의 지혜 등등을 둘러싼 격렬한 논쟁에서 간과되어 왔다.
  코끼리는 그저 멸종 위기에 놓인 한 종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보존의 기함으로서 단순히 우리의 의지(자연을 경외하고 보존하려는)를 검증하기 위한 도구처럼 인식되어서도 안된다. 코끼리의 생존에 아프리카 야생 동물의 엄청난 다양성을 이루고 있는 다른 수많은 종의 생존이 달려 있다. 이들은 모두 수백만 년의 진화를 통해 얻어진 우리의 소중한 유산인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진화생물학, 생태학, 고생물학에서의 새로운 통찰을 종합해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그저 역사의 우연한 산물일 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우세한 종이 되었으나 불행히도 우리의 영향력은 재앙이 되고 있다. 만일 우리가 계속 지금처럼 환경을 파괴한다면 이 세계의 종 절반 가량이 21세기 초에 멸종하기 시작할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 역시 역사 속의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멸종의 운명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른 종들을 보호해야 할 윤리적 의무를 지닌다. 우리의 역할은 결코 자연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기에. "


"사람의 정서는 지구상 생물의 시간 기준인 수억 년이 아니라 수십 년 혹은 몇 세대의 관점에 국한해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을 밟아가며 인류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지구 역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중요성과 하찮음이 동시에 드러난다.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분명히 어느 날부터인가 우리 종은 사라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진화생물학'과 '생태학'이라는 쌍둥이 과학은 온통 인류의 정신에 대해 확신을 준 생물관으로 물들여졌다. 이러한 관점은 위대한 자연학자 찰스 다윈과 위대한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의 혁명적이고도 강력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생물학과 지질학이라는 두 영역에서 한결같이 지구의 역사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느릿느릿 진행되었다고 주장했다. 
깊은 협곡이나 높은 산 등 거대한 지질 구조물들은 작은 변화들이 일정하게 축적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며, 대륙의 표면과 깊은 바다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생물들이 살게 된 것도 모두 이 작은 변화들의 소산이라는 것이다."


"생존자들은 타고난 우월함으로 멸종을 모면했다. 따라서 우리는 승리자의 후손이며 여기에서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초기 대량 멸종에서는 생존자의 우월함도 희생자의 열등함도 없었다. 분명히 없었다. 최근 굴드가 말했던 그대로 '지상 최대의 제비뽑기'가 행해졌으며 우리는 우연히 그 운좋은 승리자들 가운데 하나의 후손이 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른 운좋은 승리자의 후손들과 이 세상을 공유하고 있다. 제비뽑기가 다시 행해진다면 승리자들이 또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면 현대 생물의 기초가 된 몸의 설계도 역시 달라질 것이다. 초기 멸종에서 사라졌던 기이한 생물 형태로 미루어 보아 이들 중
많은 수는 아주 색다른 유형일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생물 세계(우리 역시 그 일부를 차지하는)가 필연적이며 유일한 것이 아니라 무수히 있을 수 있는 세계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


"생태 군집의 구성원은 자연의 균형 속에서 서로 멋지게 평형을 이루며 살고 있지 않다. 군집의 모양과 행동의 상당 부분은 혼돈스런 상호 작용과 미리 준비된 설명을 허용치 않는 돌발적 특성(침입에 대한 저항력과 같은)에 의해 결정된다. 
이전의 관점에 따르면 군집은 예측 가능하고 정적인 것이었다. 반면, 변화된 관점에서는 군집을 예측 불가능하고(심지어 신비스럽기까지 한) 동적인 것으로 본다. 그리고 이 동적인 상태는 현존 세계의 생물 다양성에 기여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관심은 여기에 머문다.
  직관에 반하는 이야기겠지만 꾸준한 변화(동적 상태)는 군집의 장기적인 안정을 가져오는 근원이다. 단기간의 변화를 차단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오히려 장기적으로 더 해로운 변화를 불러일으킬 뿐이다. 인간은 우리 주변의 자연 세계, 특히 우리 자신의 존재와 우리의 미래에 관하여 예측할 수 있기를 갈망한다.
그러나 진화생물학과 생태학 분야에 있어서 우리의 세계는 예측 불가능하며,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역사의 우연한 산물에 불과하다.
  현존 세계는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 그리고 적어도 몇몇 경우에 있어서는 우리의 즉각적인 이해를 벗어나는 힘에 영향받는 수많은 가능성의 장소이다. 이 세계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확실한 면이 많다. 그러나 사실 이 때문에 더욱 흥미진진하다. "


"우리는 역사의 우연한 산물이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호모 사피엔스가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우세한 유일종이라는 데에는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진화의 무대에 뒤늦게, 지구의 생물 다양성이 거의 최고의 정점에 달한 시기에 등장했다. 그리고 10장에서 보았듯이 우리는 가는 곳마다 생물 다양성을 황폐하게 만드는 능력을 지녔다.우리는 이성과 통찰력의 축복을 받아 21세기를 본질적인 인공의 세계로 몰아가고 있다. 기술의 창조는 물질적 안락을 우리에게 안겨 주고 있으며, 생활의 여가와 레저는 전례없는 예술적 창조의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이성과 통찰력은 전례없는 지구 자원(생물 자원과 천연 자원)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을 만큼 깊지는 못했다."



"1979 년 옥스퍼드대학의 생태학자 노먼 마이어는 그의 책 '가라앉는 방주'에서 삼림 개간의 절박한 위기에 관하여 논한 바 있다. 그는 이 주제에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측정한 바에 의하면 매년 2%씩의 속도로 나무가 계속 베어져나가고 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2천 년 경에는 모든 종의 4분의 1을 잃게 될 것이다. 그리고 1세기 뒤에는 나머지 종의 3분의 1이 사망자 명단에 보태질 것이다." '가라앉는 방주'가 출판되고 나서 15년이 흐른 후 그 실제적인 수를 둘러싸고 한바탕 논쟁이 일었다.
  과연 그가 주장한 속도대로 삼림이 사라지고 있는가? 설령 그렇다 해도 정말로 전체 종의 50%나 사라지게 될까? 마이어의,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예언은 처음에는 공감을 받았다. 그리고 생물학자들과 정치가들 사이에 일종의 순수한 공포심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비중있는 인물들의 입에서는 엄숙한 말들이 계속 흘러나왔다.
  한편, 1986 년 9월 워싱턴에서 생물 다양성 회의가 열렸다. 지구 클럽은 이 회의 초반부에 발표된 글에서 다음과 같이 경고한 바 있다. "종의 멸종 위기는 핵전쟁에 버금가는 문명의 위협이다." 최근 발표된 미 국립 과학아카데미와 런던 왕립 학회의 공동 성명은 이러한 경고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환경 변화의 전반적인 속도는 의심할 여지 없이 최근의 인구 팽창으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우리 지구의 미래는 환경 변화와 인구 팽창이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에 달려 있다."


"스튜어트 핌의 보고에 따르면 태평양에서만 해마다 거의 1종씩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 한다. 핌의 야외 연구는 하와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의 전문적인 관심 대상은 바로 새이다. 하와이 제도는 관광객들의 눈에 열대의 낙원으로 비쳐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섬들은 생태학자들에게 있어 최근의 비극적인 멸종의 상혼을 지닌 곳으로 인식된다. 하와이 제도에 서식했던 조류 종 가운데 약 절반 가량이 인간과 첫 대면한 이후 멸종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극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1백35종 가량의 새들 가운데 오직 11종만이 21세기까지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리처드 리키, 로저 르윈 [제6의 멸종]발췌(1)


Richard Leakey, Roger Lewin  [제6의 멸종(The Sixth Extinction)] 중에서(1)



"우리는 현재의 세계에 갇혀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을 형성한 진화 과정의 흐름을 인식한다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나 다름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창조 과정과 이따금씩 일어나는 변덕스러운 멸종 사이의 복잡하고 예측하기 힘든 항소 작용에 의한 산물, 즉 지극히 많은 종들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사실 중의 하나는 생명이 너무나 초기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46억 년 전 지구는 발생 초기 태양계의 먼지로부터 응축되어 방사성을 띤채 녹아버린 암석 덩어리로, 어떤 형태의 생명체에게도 해로웠다. 불 뿜는 탄생의 열기가 서서히 가시면서 40억 년 전 조금 못 미친 시기부터 이론상 생물의 서식이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예컨대 생성되자마자 분해되던 불안정한 유기 분자들이 더 이상 그렇게 분해되지 않았고, 단숨에 수증기로 증발되던 물이 어느 정도 남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이 두 가지 조건은 생명체의 출현에 필수적인 요소였다.
  이론상의 가능성은 이내 현실이 되어 원시 생명체가 단순한 단세포 생물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흔적은 약 37억 5천만 년 된, 전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대륙의 암석에서 발견되었다. 가장 단순한 형태를 가진 이 생물들은 핵이 없는 세포, 즉 원핵 생물로 알려졌다. 이들은 태양 에너지와 주변의 화학적 환경을 이용해서 증식, 다양한 형태로 분화했다. 그리고 집합체였던 이들이 미생물층을 이룸으로써 전시대를 통해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특징적인 군체를 창출했던 것이다.
  이렇듯 일찌감치 시작된 생물의 역사는 그 즉시 훨씬 더 복잡한 형태를 향한 점진적이고도 꾸준한 진보의 과정으로 접어들었으리라 추측된다. 처음에는 보다 복잡한 세포, 즉 유전 물질이 핵 속에 든 진핵 생물이 등장하게 되었고, 뒤이어 특수한 기능을 담당하는 분화된 세포 소기관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가 나타났으며, 그 다음에는 다세포 생물 단계로 나아가 무척추동물에서 척추동물로, 양서류와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마침내 우리 호모 사피엔스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본다면 우리는 방금 언급한 생물의 단계가 실제로 일어났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엉뚱하고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지구상에 존재한 생명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생물에 대하여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생물에 있어 점진적이고 꾸준한 것이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이것은 프랙탈 무늬처럼 전체에서 부분에 이르기까지 모든 척도에 적용된다).
  이처럼 급하게 최초의 발판을 마련한 이후, 놀랍게도 20억 년 동안이나 가장 복잡한 생물 형태는 원핵 생물과 그것들의 복잡한 조직인 스트로마톨라이트 군체에서 머물러 있었다. 생물들은 어디로 나아가기 위해 별로 서두르는 것 같지 않았다. 약 18억 년 전 비로소 진핵 세포가 등장했을 때, 그것은 마치 다음 단계인 다세포 생물로 향하는 경주를 위한 안정적인 무대가 마련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아니었다. 다세포 생물이 진화하기까지는 또 다시 10억 년 이상이 더 흘러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타났을 때조차도 그 생물들이란 기껏해야 간신히 눈에 띄는 정도라서, 우리가 다세포 생물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복잡한 조직을 갖고 상호 작용을 하는 '선구자'는 분명 아니었다. 복잡한 다세포 생물 여기서는 다소 수수하고 이상야릇하게 생긴 바다 무척추동물을 의미의 출현은 약 5억 3천만 년 전까지, 그러니까 현재의 지구 역사가 85%나 기록되고 난 뒤까지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이 시작되었을 때는 너무나 장관을 이루어서, 고생물학자들이 '캄브리아기 대번성'이라 부르는 일대 사건이 되었다."

"생물 게임에는 엄청나게 다양한 '단역'들이 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이들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소수의 진귀함에 매료되는 것이다. 척추동물은 현재의 약 30여 동물 문 가운데 하나인 척색동물문에 속한다. 우리는 흔히 나머지 29문의 대부분을 보잘것없는 생물 형태로 치부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예컨대 절지동물(거미, 곤충, 가재 등), 환형동물(지렁이 등), 강장동물(산호 등), 해면동물, 연체동물(대합, 달팽이, 오징어 등), 극피동물(성게, 불가사리) 등이다.
  현재의 지질연대인 '신생대'는 흔히 '포유류의 시대'라고 불리는데, 이는 생물에 대한 극도의 편견을 반영하는 것이다. 생물 게임에서 성공에 대해 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린다면, 적어도 숫자상으로는 절지동물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절지동물은 지구 역사의 상당 기간 동안 우위를 차지했고 현존하는 생물 종의 약 40%를 구성하고 있다."

"야블론스키는 "대량 멸종 시기 동안에는 적응력이나 적합성보다 특정 군집의 구성원, 지역 혹은 분포 범위가 더 중요하다."고 썼다. 이것은 최초로 배경 멸종과 대량 멸종 사이의 법칙들이 바뀌었음을 분명히 밝혔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생물상의 위기는 단순히 배경 멸종이 심한 경우만은 아닌 것이다. 생물 역사에서 번성했던 수많은 종, 그리고 종 집단이 대량 멸종에 의해 갑작스럽게 사라졌다는 점을 고려해 보면 위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공룡과 암모나이트는 수백만 년 이상 번창했으며 백악기 말의 멸종에서 그들이 사라져갈 무렵까지 그 종류 또한 전례없이 다양했다. 포유류가 공룡보다 어떤 면에서 더 잘 적응했다는 증거는 없다. 한편 바다에서는 우세한 현존 생물이 전멸함으로써 모래톱의 군집이 주기적으로 변형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주요한 멸종 위기를 가져온 4번의 사건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일치했다. 각각의 재앙이 끝난 후 때로는 석회질 바닷말이 주위를 뒤덮었고 때로는 이끼 벌레가 번창했다.
  어떤 때는 연체동물이 우위를 점했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산호가 모래톱의 우세한 종으로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에게 친숙한 산호초는 단지 그 적응대의 일시적인 거주자일 뿐, 이들 중 그 어느 것도 다른 종에 비래 절대적으로 우세하지 않았다. 캄브리아기 대번성에 뒤이어 문의 수가 크게 감소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대량 멸종으로 비롯된 중대한 동물상의 변화에서 승자가 적응상 우위에 있었다고 평가되는 예는 일찍이 없다.
  물론 우리는 너무나 멀리서 판단하고 있으며 적응의 우위가 어떤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만일 그랬다 하더라도 그 요소는 너무나 미묘해서 우리가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이다. 라우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멸한 사실을 빼고는 희생자가 승자보다 열등했음을 보여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진실이다."라고 지적했다.
  더 나아가 간단한 적응 우위성 일반적인 다윈주의의 상식에서 이 주요한 생물상 위기의 한 요인은 아니었을 거라고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연 선택은 지역 상황과 연관된 개체 수준 경쟁자와 우세한 물리적 환경에 의한 영향에서라야 설득력을 지닐 수 있다. 그것은 즉각적인 생물의 체험에 대한 강력한 반응이다. 그러나 미래의 사건을 예견할 수는 없으며 드물게 일어나는 사건을 예측할 수도 없다."

"다윈의 진화론이 등장하면서 세계 질서의 근원을 보는 방식은 달라졌다. 질서는 창조의 산물이 아니라 역사의 결과 혹은 다윈의 말처럼 '계통의 변형'이었다. 모든 생물은 진화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연결된 공통의 뿌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인간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의 세계관은 진화 이전의 입장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가 진화의 최종 한물을 나타내며 몇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다른 나머지 자연과 뚜렷이 구별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지리적 분포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에서부터 유럽인들에 이르는에 따라 인종적 우월감도 단계적으로 증가했다."

"실질적으로 자연계의 종수는 확실히 과소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목록도 여러 측면에서 왜곡되어 있다. 첫째, 곤충이나 선충류, 박테리아보다는 조류, 포유류를 연구하는 분류학자들이 훨씬 더 많다. 이것은 부드러운 털이나 깃털로 덮인 생물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관심이 반영된 것이다. 어쨌든 그 결과 조류와 포유류의 새로운 종이 매년 발견된다 하더라도 그 수는 매우 적을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인 총계 또한 현재 수치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박테리아의 예를 통해 증명된 것처럼 자연계의 나머지 실제로는 거의 모두경우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두 번째 경향은 북반구의 온대 지역에 대다수 분류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종은 열대 지방 가까이에 집중 서식하고 있다. 게다가 온대 지방에 사는 종은 열대 지방에서도 살지만 북반구의 위도가 높은 곳에만 사는 종은 단지 둘 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대형 척추동물과 식물의 세계는 생물 다양성 전체에서 보면 지극히 일부일 뿐이다. 생물 다양성의 실체는 극히 적은 수의 대형 생물과 무수히 많은 작은 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이들 모두 생태 군집을 통한 에너지 흐름의 일부로서 각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의 정도를 확실히 예측하기란 힘들다. 현재 지구상에 배치된 대륙들이 1백만, 1천만, 3천만, 5천만, 아니며 1억 종의 생물을 지탱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확실히 말해 주는 생태학과 진화생물학의 이론적 기반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말한 종의 수는 모두 불확실한 수치이다. 하나같이 몇몇 현장 측정으로 추정한 것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일부 계산에서 얻어진 종수 사이의 비율^6,36^예컨대 식물에 대한 곰팡이의 비율과 같은을 다른 지역에 적용해 보면 틀릴 가능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이 현장 측정이 종수를 계산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실행 가능성이 크다. 75 만 종의 곤충을 생물학자들이 동정(생물 분류학상의 소속을 정하는 것)하는 데만 약 2백30 년이 걸렸다.
  만약 어윈이 추정한 대로 약 3천만 종이 실재한다면, 곤충분류학자들이 과거의 속도로 작업해 나간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1 만 년은 족히 일에 매달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큐 식물원의 책임자인 길레앙 프랑스Prance는 지금까지의 속도대로라면 분류학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식물을 모두 파악하는 데 거의 4세기 가량 걸릴 것이라고 추정했다. 한편 이들 곤충, 식물 분류학자들은 단순히 종을 세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목록으로 묘사해냈다.
  그 결과 얻어진 각 목록들은 수억 년에 걸친 진화의 유산이다. 우리는 그 엄청난 유산 중 극히 일부의 독특한 생물 형태를 여기에 담았다. 서구 과학이 지금껏 이 일에 전념했건만 목록의 수는 애석하게도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쏟은 노력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다. 메이는 지구상의 막대한 생물 다양성에 가치를 부여하고자 했다. 그래서 앞서 언급했듯이 다음과 같이 논평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종이 지구 위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한 자리수 내에서는 알지 못한다."

  한편 에드워드 윌슨은 "정말로 우리는 지구상 생물의 총수를 완전한 목록으로 작성하는 것 외에 달리 목표로 할 만한 것이 없는가?"라고 역설했다. 목록의 완전한 작성은 분명히 비용이 많이 드는 시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연간 1억 5천만 달러가 드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나 총 비용이 약 3백억 달러에 이르는 '우주 정거장 건설'보다는 훨씬 적은 비용이 들 것이다. 나는 야생동물보호국( 취임한 지 약 1년이 지난 후 케냐 야생동물국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책임자로서 거의 매일같이 '종의 보호'를 위해 드는 비용을 실감했었다. 보통 보호의 대상이 되는 종은 상당히 특이한 종류들이다.
  나는 많은 국가들이 한해 1억 달러 정도만 지출한다면 족히 인구의 지속적인 성장에 맞서 야생 생물을 보호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윌슨의 말은 분명히 과학적 가치가 있으며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류를 위해 가치가 있다. 우리는 진화 과정의 정점에 서있는 지각있는 종이다. 따라서 이 지구를 우리와 공유하고 있는 '지극히 아름답고 무한한 형태'들에 대하여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알아야 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것이다. "



"많은 생태학자들이 개인적으로는 일티스와 견해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이 원하는 조건으로 그들을 만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생태계를 금전적 수치로 표현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이것은 다분히 위험한 전술이다. 비록 달러 수치가 신뢰성 있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결코 생물 다양성의 가치를 보증하거나 생태계 파괴에 대한 완전한 방어를 의미할 수는 없다. 장래의 물질적 혜택이 25 만 종의 모든 식물을 유지하는 데 달려 있다고 누가 진정으로 주장해 주겠는가? 물론 우리는 이들 종 가운데 어떤 것에 에이즈
치료약이나 새로운 주요 작물의 유전자가 들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수의 절반 정도라도 우리가 적절한 노력만 기울인다면 그들은 우리가 찾는 혜택을 끄집어낼 수 있는 방대한 유전자 도서관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잠재적 물질 혜택을 주지 않는 종은 어떤가? 그들은 정말로 가치가 없는 것인가? 경제적 측면에서는 물론 그렇다. 데이비드 에렌펠트는 "만일 내가 수많은 생물 다양성의 개척자 혹은 파괴자들 가운데 한 명이라면 결국 나와 반대 입장에 서있는 보호론자와 하등 다를 바 없이 가치 평가의 문제로 수렁에 빠지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환경이 변하면 가치도 변하게 마련이다. 깃대만 해도 그렇다.
그것은 한때 널리 이용되는 필기구였다. 그래서 당연히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지녔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전세계 식물이 지닌 새로운 의약 출처로서의 가능성은 새로운 약품 생산 방법이 개발되면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사라질지도 모른다. 실제로 제약업에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이론화학이 등장했으며 미리 조절된 환경하에서 화학 약품을 '진화'시키는 기술도 등장했다. 이로 인해 제약업은 이미 열대림을 쓸모없는 존재로 만드는 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생태학자들은 열대 우림의 중요성에 대한 주된 논거를 잃게 될 것이고 오랜 논쟁은 경제학자들의 승리로 마감될 것이다. 에렌펠트는 "다양성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해서 우리가 단순히 다양성을 없애는 그 과정 어떤 중요한 결정에서 문제가 되는 첫 번째 요건은 경제적 비용과 이익의 확실한 크기만을 합법화시킨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잣대를 그대로 놓고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명백히 하기만을 계속 주장한다면 소동이 가라앉고 난 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단지 어리석은 행동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 역시 이러한 논리에 동의한다. 그러나 경제적인 측면이 전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나처럼 현실에서의 보존을 일상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 있어 경제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예컨대 공원이나 보호구로서의 생태계는 관광이라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것은 물론 공원이나 주변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질적인 혜택을 안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을 '보존'해야 할 아무런 동기도 부여하지 못한다. 그러나 경제학을 기본틀로 놓고 그 속에서 생태계의 금전적인 가치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며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 것이다."



"반면에 인간 정신과 자연 세계의 본질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소홀히 생각해 왔다. 하지만 아무리 무시한다고 해도 그 관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한다. 한편 다른 문화에서의 가치관은 서구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반세기 전에 아메리카 원주민인 루더 스탠딩 베어Bear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이 땅에서 우리와 더불어 자란 새와 짐승들을 사랑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물을 마셨고 똑같은 공기로 숨을 쉬었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이다. 또한 그렇게 믿고 있기에 우리의 가슴에는 살아 있는 모든 생물에 대한 크나큰 평온과 기꺼운 호의가 자리하고 있다."
  서구 문화는 호모 사피엔스를 이 세상의 예외적인 존재로 생각해 왔다(실제로 여러 가지 면에서 그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급기야 호모 사피엔스가 세계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고 간주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현재와 같은 완전히 완성된 형태로 지구의 생물들에게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해 어느날 갑자기 착륙했다는 말과 같다. 물론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를 기나긴 진화 과정의 산물이자 정점으로 생각하기는 쉽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특별하고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한다"









이백 (李白)의 월하독작 (月下獨酌) 3,4수


정월대보름은 지나가고... 레이디가카의 취임날이네...


이백 신선님의 "근심은 많고 술이 비록 적지만 술을 기울이니 근심이 오지 않네."...
ㅎㅎㅎ 정말 기가 막힌 구절이다^^

에효... 답답한데... 술 한잔 없는 밤이로구나... 먹어도 넘어가질 않을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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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 (李白)의 월하독작 (月下獨酌) 3,4 수


제3수

3월의 함양성에

온갖 꽃이 대낮에 비단과 같네.

누가 능히 봄에 홀로 근심하는가?

이런 풍경 대하면 곧장 술을 마시네.

궁하고 통함, 장수와 단명은

일찍이 조화옹이 주신것.

한 잔 술에 죽음과 삶이 같아지니

모든 일이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네.

취한 뒤에는 천지도 잃어버려

멍하니 외로운 베개를 베는구나.

내 몸이 있는 것조차 알지 못하니

이런 즐거움이 최고의 기쁨이로다.







三月咸陽城 千花晝如錦

誰能春獨愁 對此徑須飮

窮通與修短 造化夙所稟

一樽齊死生 萬事固難審

醉後失天地 兀然就孤枕

不知有吾身 此樂最爲甚



제4수


궁핍한 근심 천만 갈래이니

맛있는 술 3백 잔을 들 것이라.

근심은 많고 술이 비록 적지만

술을 기울이니 근심이 오지 않네.

하여 술을 성인에 비유함을 알겠는바

술이 거나해지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하네.

곡식을 사절하고 수양산에 누웠고,

자주 텅텅 비어 안회는 굶으면서

당대에 술 마시기를 즐기지 않았으니

그 헛된 이름을 무엇에 쓸 것인가?

게와 가재가 곧 금액이요,

술지게미 언덕이 바로 봉래산이네.

바야흐로 반드시 아름다운 술을 마시고

달빛을 타고 높은 누대에서 취할지어다.


窮愁千萬端 美酒三百杯

愁多酒雖少 酒傾愁不來

所以知酒聖 酒酊心自開

辭粟臥首陽 屢空飢顔回

當代不樂飮 虛名安用哉

蟹蠣卽金液 糟丘是蓬萊

且須飮美酒 乘月醉高臺

이백(李白) 상류전행(上留田行)


이백. 천하가 내노라 하는 이 술푸대의  시들중에 가슴이 찌릿한 것들이 꽤 있다. 상류전행은 그 중의 하나로, 당나라 현종때 여러 반란과 현종 아들들의 권력다툼등으로 무너져가는 당나라의 현실을 노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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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류전행(上留田行)

               
                                       - 이백(李白) -

行至上留田,孤墳何崢嶸     발길이 上留田에 이르니,외로운 무덤 어찌 이리도 험한가
積此萬古恨,春草不復生     이 萬古의 恨이 쌓여,봄풀이 다시 나지도 않는다.
悲風四邊來,腸斷白楊聲     서글픈 바람 사방에 불어오고  애끊는 듯한 백양나무 소리
借問誰家地,埋沒蒿里塋     잠시 묻노니 누구네 땅이런가   쑥더미에 무너진 무덤
古老向余言,言是上留田     늙은 노인 내게 말하기를  여기가 上留田이라.
蓬科馬鬣今已平             무덤은 쑥대 자라고 말갈기처럼 갈라져 이제 평평해지고
昔之弟死兄不葬             옛날에 아우가 죽었어도 형이 장사를 치루지 않아
他人於此擧銘旌             남들이 여기에 명정을 걸어주었단다.

一鳥死,百鳥鳴             새 한 마리 죽으니 온갖 새가 울어대고
一獸走,百獸驚             짐승 한 마리 달려가니 모든 짐승들이 놀라대는구나

桓山之禽別離苦             桓山의 새도 이별이 괴로워서
欲去迴翔不能征             떠나려다가 빙빙 돌기만하고 차마 떠나지 못한다

田氏倉卒骨肉分             田氏네는 갑자기 골육이 분쟁하더니
靑天白日摧紫荊             파란하늘에 해가 찬란한데 紫荊나무 부러져 버렸다

交柯之木本同形             서로 엇갈린 나뭇가지라도 본래는 한 모양인데
東枝憔悴西枝榮             동쪽 가지 마르면 서쪽 가지 무성해진다

無心之物尙如此             無心한 미물조차 이와 같거늘
參商胡乃尋天兵             參성과 商성은 어떻게 천병을 찾겠는가

孤竹延陵,讓國揚名         孤竹과 延陵은, 나라를 사양하여 이름을 드높였지만
高風緬邈,頹波激淸       높은 인덕은 아득하기만 하고 퇴폐한 물결이 맑은 물결을 쳐버리니
尺布之謠,塞耳不能聽    형제 불화를 노래한 尺布의 노래를 막힌 귀로는 듣지를 못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