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교수님의 개미제국 중에서
오천만년 전통의 농사꾼 :
잎꾼개미의 거대한 지하버섯농장
농자천하지대본이라 했지만 인류가 처음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불과 1만년전쯤이라고 한다. 산업혁명과 더불어 우리인간을 이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한 종으로 만들어 준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수렵채취시기에는 수적으로 그다지 우세한 종이 아니었던 인류가 농경사회에 접어들면서부터 또 그 후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여 급기야 오늘날에는 인구증가를 막기 위해 고민해야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인간은 과연 어떻게 농경이란 엄청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산과 들에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열매나 씨앗들을 찾아먹다가 어떻게 그들을 땅에 심어 길러 먹을 생각을하게 되었을까? 인간은 참으로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는것같다.
최초의 농경사회
그러나 최근 미국 코넬대학의 곤충학자들을 주축으로 수행된 연구에 의하면 인간보다 무려 5천만년전에 이미 농사를 시작한 동물들이 있었다. 아메리카대륙의 열대지방 전역에 걸쳐 서식하는이른바 잎꾼개미들이 바로 지구 최초의 농사꾼들이다. 중남미의 열대림에 가면 흔히 제가끔 자기몸보다도 더 커다란 이파리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가는 잎꾼개미들의 긴 행렬을 볼 수 있다.이러한 잎꾼개미들의 행렬은 때로 수백미터에 달하는 장관을 이룬다. 필자는 지금도 1984년 여름중미에 있는 코스타리카의 라셀바지방 열대림속에서 난생 처음으로 잎꾼개미들의 행렬을 보았을 때의 감동을 잊을수가 없다. 시각이 끊이는 곳까지 길게 이어진 그들의 행렬을 멀리서 바라보노라면 어느새 작은 개미들의 모습은 간데없고 크고 작은 이파리들만이 언뜻언뜻 숲속으로 새어드는 햇빛에 반사되어 출렁이며 흘러간다.
이렇게 수확해 온 이파리들은 그대로 개미들의 식탁에 올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만이 경작하는 독특한 종류의 버섯을 키우는 배양매체로 쓰인다. 개미들은 버섯들에게 그들 혼자힘으로는 구경도 해보지 못할 양의 식물체를 먹이로 제공하고 버섯들은 그것을 먹으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단백질과 당분이 담뿍 든 균사체를 만들어 개미들에게 제공한다. 미국 콜롬비아대학에 있는 필자의 동료 웨터러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잎꾼개미들은 이파리에서 나오는 식물의 즙도 일부 섭취하지만 대부분의 잎들은 버섯농장의 거름으로 쓰인다.
지상엔 파괴, 지하엔 건설
지구상에는 현재 약 200여종의 개미들이 각기 크고 작은 버섯농장들을 경영하고 있다. 이들 버섯개미중에는 동물의 분비물이나 썩은 시체들위에 버섯을 키우는 것들도 있고 잎꾼개미들처럼 나뭇잎을 거둬들여 버섯농장을 경영하는 것들도 있다. 필자가 코스타리카의 라셀바지역에서 관찰한앱테로스티그마(Apterostigma)버섯개미는 아이들 주먹만한 곰팡이 주머니를 만들어 나무둥치에 매달고 그 속에서 살고 있었다. 주머니의 중간쯤 작은 구멍을 뚫고 그리로 동물 찌꺼기를 물어들여 버섯을 기르는 것이었다. 그들 중 한 군락을 열어보니 잎꾼개미와는 달리 그들의 여왕개미는일개미들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았다. 다만 가슴이 더 두툼할 뿐이었다.버섯개미들중 규모나 기술면에서 가장 크고 발달된 농장을 운영하는 것들은 애타(Atta)와 애크로머맥스(Acormyrmex)라는 속의 잎꾼개미들이다. 이 두속에는 약 40종이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모두 미국의 루이지애나주와 텍사스주로부터 남미의 아르헨티나에 걸쳐 분포한다. 개미들의버섯농장이 왜 신대륙에서만 왕성하게 발달하게 되었는지는 대단히 흥미로운 연구과제이다.
잎꾼개미들은 마치 파괴와 부흥을 상징하는 힌두교의 신 시바와도 같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어 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큰 정자나무 정도의 나무도 일단 잎꾼개미들이 덤벼들어 잎을 따들이기시작하면 그저 한 이틀이면 벌거숭이가 되고 만다. 아프리카의 초원을 휩쓸며 온갖 식물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코끼리떼의 왕성한 식욕도 잎꾼개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중남미 열대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온대지방 사람들처럼 농사를 짓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중의 하나도 바로이 잎꾼개미들 때문이다. 오랫동안 정성스레 가꿔온 밭이 잎꾼개미들에게 걸리면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만다. 생태학자들의 계산에 의하면 중남미 열대림에서 잎꾼개미들에 의해 소비되는 잎의 양은 전체의 약 15프로에 달한다.
그러나 이렇듯 무자비한 약탁자들이 땅속으로 들어가면 더할 수 없이 양순한 농부가 된
다. 고도로 조직화된 버섯농장에서 제가끔 자기 부서를 지키며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
행한다. 지상의 파괴가 지하에서는 에덴 동산으로 부활하는 셈이다.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
아도 사실상 잎꾼개미들의 파괴는 단순히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다. 우리 나라와 같은 온대
지방에서 지렁이들이 땅을 일구어 다시 비옥하게 만드는 것처럼 열대에서는 이들 잎꾼개미
들이 땅을 기름지게 한다. 잎꾼개미 군락 하나가 파엎는 흙의 양은 평균 20 세제곱 센티미
터가 넘으며 무게로 따지면 약 44톤이나 된다. 일개미 한 마리마다 자기 몸무게의 너댓 배
나 되는 흙덩이들을 적어도 10억 번 이상 굴 밖으로 끌어냈다는 이야기다. 잎꾼개미들이 하
는 일의 양을 사람에 비유하면 마치 만리장성을 쌓는 격이다.
버섯농장의 조립라인
잎꾼개미의 사회는 고도로 조직화된 계급사회다. 몸길이가 불과 2-3mm에 지나지 않는 농장의 정원사개미로부터 무려 300배 가량이나 무겁고 머리의 폭도 6mm나 되는 병정개미까지 몸의 크기에 따라 네 계급의 일개미들로 구성되어 있다. 병정개미들은 말 그대로 잎꾼개미 사회에서 국방을 담당하는 군인들이다. 적이 나타나면 지체 없이 출동하여 그들의 막강한 이빨로 가차없이 물어뜯는다. 그들의 이빨은 사람의 살갗은 물론 웬만한 가죽 정도는 간단히 찢어버린다. 필자도 언젠가 파나마에서 한 잎꾼개미 군락을 파헤치다 어느 병정개미에게 왼쪽 새끼 손가락을 물렸는데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었으나 출혈이 적지 않아 한동안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손가락에 매달린 개미를 떼어내려 잡아당겼더니 그만 목이 끊기고 말았다. 어찌나 악착같이 물고 있었는지 머리는 그대로 남고 몸만 떨어져 나간 것이다.병정개미보다 한 계급 낮은 일개미들이 바로 이파리를 자르고 그들을 운반해 오는 잎꾼들이다. 한쪽 뒷다리로 잎의 가장자리를 잡고 그곳을 축으로 하여 날카로운 이빨을 마치 전기식칼처럼 사용하여 동그랗게 자른 뒤 집으로 운반한다. 사실 이들이 이파리를 물고 이동하는 속도는 걸을을 재촉하는 정도가 아니다. 사람에 비유하면 약 15km나 되는 귀가길을 시
속 24km의 속력으로 달리는 셈이다. 마라톤 선수를 방불케 하는 속력이다. 더욱 놀라운 것
은 300kg이 넘는 짐을 잎에 물고 달린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마라톤은 폭우가 쏟아지는 때
를 제외하곤 거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잎꾼들이 이파리를 굴 속으로 운반해 오면 그들보다 조금 작은 일개미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 그 잎들을 받아 톱날같은 이빨로 잘게 썬다. 그러고 나면 이번엔 더 작은 일개미들이 잘게 썰린 잎조각들을 잘근잘근 씹어 마치 종이를 제작할 때 쓰는 펄프처럼 만든 다음 효소가 담뿍 들어 있는 배설물과 잘 섞는다. 이렇듯 잘 반죽된 <잎죽>은 다음 방으로 옮겨져 미리 깔아둔 마른 잎들 위에 골고루 뿌려진다. 다음엔 조금 더 작은 일개미들이 이미 버섯을 키우고 있던 다른 방에서 버섯을 조금씩 떼어다 이파리 반죽 위에 가지런히 심는다. 새로운 배지에 옮겨진 버섯들은 제철 만난 들풀마냥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다. 버섯의 성장속도가 빠른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유럽 사람들은 버섯을 일컬어 신이 주는 선물이라 했다. 밤새 비가 내린 후 어젠 흔적도 없던 곳에 쑥쑥 솟아오른 버섯들을 보면 정말 밤새천사들이 내려와 심어놓고 간 선물인 듯싶다.
버섯농장의 정원사들은 잎꾼개미 사회에서 가장 몸집이 작은 꼬마 일개미들이다. 그들은 농장 주변을 늘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은 물론 김매는 일, 수확해들이는 일 등 실제 농사일을 도맡아 한다. 잎을 잘라 저장하는 과정까지 잎꾼개미들의 작업현장은 우리 인간사회의 현대식 제조공장에서나 볼 수 있는 조립 라인을 방불케 한다. 몸의 크기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각자 맡은 바 임무에만 몰두하는 잎꾼개미들이야말로 분업의 극치라 하겠다.
씨버섯을 혼인 지참금으로
여왕개미가 새 살림을 차릴 땐 일개미들의 도움 없이 혼자서 시작한다. 그렇다면 과연 버섯농장의 종자는 어디서 구해오는 것일까? 인간 사회의 여러 문화권에서 여자가 시집을 갈때 친정으로부터 지참금이나 다른 소중한 물건을 품에 안고 가듯 잎꾼개미의 여왕들은 혼인비행을 하기 위해 어머니의 집을 떠날 때 씨버섯 한 줌을 입 속에 있는 조그만 주머니에 넣어둔다. 수개미들과 교미를 마친 후 좋은 터를 골라 굴을 파고 새 살림을 차리자마자 여왕개미는 씨버섯을 뱉어 새 농장을 일구기 시작한다. 이렇게 마련한 조그마한 정원이 일개미들이 태어나 외부로부터 잎을 물어들이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성장하여 거대한 규모의 농장으로 변신하는 것이다.이처럼 어머니로부터 딸로 이어진 모계사회의 전통 덕택에 미국 남부로부터 중남미 대륙전역에 걸쳐 분포하는 잎꾼개미 군락 모두가 같은 종류의 버섯을 재배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최근 미국 코넬 대학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DNA 분석법을 이용하여 조사한 결과 잎꾼개미들과 버섯과의 관계는 거의 2천5백만 년 전부터 내려온 것이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마치 유산균을 대대로 물려받으며 요구르트를 생산하는 것과 흡사하다. 초창기의 잎꾼개미들은 집주변에 자라던 버섯들을 이것저것 길러보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가장 훌륭한 품종의 버섯을 찾은 후에는 오로지 그 한 품종만을 경작해온 것이다. "신토불이"도 이쯤은 돼
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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