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ent

칼 맑스 철학의 빈곤(2)

철학의 빈곤을 읽기전에 우선적으로 읽어둘만한 내용이 1846년에 안넨코프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두편으로 나눠서 발췌를 하는데 맑스의 역사관, 그 역사관에서 출발한 사회관계들을 보는 눈을 보게 된다. 왜 맑스주의를 '과학적 사회주의', 또는 '역사적 유물론'이라 명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맑스의 저작을 거의  20년만에 다시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현재에서 또 지금의 현실에서 "역사적 유물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이다. 다름아닌... 이행의 문제로... 참으로 머리아프고... 어려운 주제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공상주의나 이상주의를 싫어(?)한다... 그런데 이행의 문제는 현실의 문제인지, 미래의 문제인지 모호한 성격이 있다... 나이가 들어가서 그런가...  이행은 후대에게 넘기는 손쉬운 방법을 찾아버렸다^^



**************************

철학의 빈곤(2)

안넨코프에게 보내는 편지(1)


"그것의 형태가 어떠하든지 간에 도대체 사회란 과연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 상호간의 행위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또는 저러한 사회를 선택할수 있을 만큼 인간은 자유롭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만약 귀하께서 인간 생산력의 특정한 발전상태를 상정해보신다면 귀하는 곧 특정한 교통(교환)형태와 소비형태를 얻게될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귀하께서 일단 생산과 교환 및 소비의 특정한 발전단계를 상정해보신다면, 귀하는 하나의 특정한 사회질서, 가족, 신분 혹은 계급들의 하나의 특정한 조직형태,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의 특정한 시민사회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귀하께서 하나의 특정한 시민사회를 전제하신다면 귀하는 곧 시민사회의 공적 표현에 지나지 않는, 특정한 정치적 제관계를 발전하실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들의-인류 전체 역사의 토대인- 생산력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은 중언부언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생산력은 하나의 획득된 힘, 과거의 활동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산제력은 인간적 에너지가 적용된 결과물이지만, 이러한 에너지자체는 인간들이 그 속에 자리잡고 있는 제반관계를 통해서, 이미 획득되어진 생산제력을 통해서, 그들보다 먼저 존재하고, 그들 자신이 창조하고, 지나간 세대의 활동의 결과물인 사회적 형식을 통해서 조건지어집니다.

모든 새로운 세대는 구세대에 의해 획득된 생산제력을 현존상태로 발견하며, 또 그것들은 그들에게 새로운 생산을 하기위한 원료로써 봉사한다는 단순한 사실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연관이 성립하며, 인간의 생산제력과 또 그에 따라 인간들간의 사회적 연관이 성립하며, 인간의 생산제력과 또 그에따라 인간들간의 사회적 연관이 성장하면 할 수록 그것이 더욱더 인류의 역사가 되는 그러한 인류사가 성립하게 됩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아래와 같은 결론이 도출됩니다; 비록 개인들이 그것에 대해 의식하고 있건 의식하고 있지 못하건 간에 인간의 사회사는 항상 단지 그 사회를 이루는 개인들의 발전사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들간의 물질적 관계가 그들간의 모든 관계의 기초, 토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물질적 관계란 그 속에서 그들의 물질적이며 개인적인 활동이 실현되는 필연적 제 형태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프르동의) 영원한 이성의 경제적 진화으ㅢ 계열은 분업과 함께 시작합니다. 프르동씨에게 있어서 분업은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면 카스트제도도 특정한 종류의 분업이 아닙니까? 그리고 길드체계도 역시 또 다른 종류의 분업이 아닙니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17세기 중엽쯤 시작되어 18세기말쯤에 사라진 매뉴팩처시대의 분업 또한 거대한 규모의 근대적인 산업에서의 분업과는 완전히 상이한 것이 아닙니까?

분업에 대해서 이야기할때, 그는 세계시장에 대하여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읍니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그러나 아직 식민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유럽을 위해 아메리카가 아직 존재하지 않앗던, 그리고 동인도가 단지 콘스탄티노플의 중계를 통해서만 존재햇던, 14세기와 15세기의 분업은 이미 발달한 식민지제도를 가지고 있던 17세기의 분업과 그 근본부터가 상이한 것 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모든 민족의 전체적인 내적 조직체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또 제 민족간의 국제적인 연관이란 특정한 분업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을 표현하고 있을까요? 오히려 그것들은 분업의 변화와 함께 변하는 것 아닙니까?...(프르동씨는)독일에서 9세기에서 12세기에 이르기까지 완결된 도시와 농촌의 분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습니다.

프르동씨는 그가 머리속에서 분업, 기계, 경쟁, 독점, 조세제도 또는 경찰제도, 무역결산, 신용, 소유를 여기에서 인용한 순서에 따라 성립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가운데 그 어느때보다도 뛰어난 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국 프르동씨의 체계에 있어서는 소유가 최후의 범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반대로 실제 세계에서, 분업과 위에서 언급된 모든 범주들은 사회적 제 관계이며, 그러한 제 관계의 총체가 오늘날 사람들이 소유라고 부르는 것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 관계밖에서의 브르주아적 소유란 형이상학적 또는 법률적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시대의 소유, 즉 봉건적 소유는 완전히 다른 사회적 제 관계하에서 발전된 것입니다.

프르동씨가 소유를 하나의 자립적인 관계로 묘사할때, 그는 단순한 방법상의 결합이상의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브르주아적 생산의 모든형태를 결합시키고 있는 유대를 파악할수 없으며, 또 그가 생산 제 형태의 역사적이며 인과적인 특성을 특정한 시대속에서 파악할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우리의 사회제도를 역사의 산물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며 그것의 기원이나 발전을 이해할 수 없는 프르동씨는 그것들에 대해 단지 독단적인 비판만을 할 수 있을 뿐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