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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맑스 협동조합운동(2)-1864 런던


1864 런던 국제노동자 협회 발기문 중에서 협동조합 부분

                                                           
                                                               - 칼 맑스 -


"우리는 협동조합 운동, 특히 몇몇 대담한 "일손들"에 의해 이루어진 협동조합 공장을 두고 말하는 것 입니다. 이 위대한 실험들의 가치는 아무리 과대평가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논의가 아닌 행위를 통해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대규모로 이루어지며 또 현대과학의 진보와 조화를 이루는 생산은 '일손'계급을 고용하는 '주인'계급이 존재하지 않아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 열매를 맺으려면 노동수단이 노동하는 사람 자신을 지배하는 수단이나 노동하는 사람 자신을 혹사하는 수단으로서 독점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노예노동이나 농노노동과 마찬가지로 임금노동 또한 과도적이고 낮은 단계의 사회적 형태일 뿐이며, 자발적인 손과 건전한 정신과 즐거운 마음으로 근로가 수행되는 연합된 노동앞에서 사라져버릴 운명이라는 것, 영국에서는 협동조합의 씨앗이 로버트 오웬에 의해 뿌려졌습니다; 대륙에서 시도된 노동자들의 실험들은 사실, 1848년에 발명되지는 않았지만 소리높이 선포되었던 이론에 매우 근접한 실천적 출구입니다

동시에 1848년에서 1864년까지의 경험은 노동자계급의 총명한 지도자들이 1851년과 1852년에 영국의 협동조합운동과 관련하여 주장했던 다음과 같은것을 의심할 여지없이 증명하였습니다.

아무리 원칙상 탁월하고 실천상 유익하다 하더라도 협동조합식 노동이 개별노동자들의 우연적인 노력이라는 협소한 영역에 제한된다면, 기하급수적으로 자라나는 독점의 성장을 억제할 수 없으며, 대중을 해방시킬수 없으며, 심지어 그들의 빈곤이라는 짐을 눈에 띄게 덜어 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듯하게 이야기하는 귀족들과 브르주아-박애주의적 말꾼들과 싸늘한 몇몇 정치경제 학자들이, 예전에는 자신들이 그 맹아상태에서 숨통을 끊으려 시도한 바 있고,  몽상가의 유토피아라고 비웃은바 있으며, 사회주의자들의 이단이라고 유죄판결을 내린바 있는 바로 그 협동조합 제도에게 아첨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근로대중을 해방시키려면 협동조합제도는 국민적 규모에서의 발전과 국민적 수단에 의한 추진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토지귀족들과 자본귀족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독점의 방어와 영구화를 위해 언제나 자신들의 정치적 특권들을 사용할 것입니다.

노동의 해방을 추구하는 대신에 그들은 그 길에다 자신들의 가능한 모든 장애물들을 실어 나를 것입니다. 파머스턴경이 지난 번 의회 회기에 아일랜드 소작인들의 권리의 옹호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비웃으면서 외쳤을때, 그는 가슴깊이 품었던 것을 털어 놓았던 것입니다;
하원은 토지소유자들의 의회이다!!

.....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칼 맑스 철학의 빈곤(3)


맑스가 안넨코프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공상적사회주의=쁘띠브르주아의 사상이라는 내용에 관한 부분들은 발췌하지 않았다. 맑스와 프르동의 세계관을 중립적으로 판단하는데 약간 마이너스가 될것 같아서이다.

대기업 특히 다국적 기업의 문제는 이제 엄연한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새로이 조명받는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유기농조합 기타등등이 경쟁-독점 또는 독점-경쟁의 구도를 넘어설수 있는지도 참 의문사항이다...

맑스가 말하고 있는 "경쟁과 독점 및 그들 사이의 적대관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일,종합, 그리고 경쟁과 독점사이의 현실적 균형을 표상하고 있는 운동 마저도 폐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정치경제학 비판 강요"를 발췌하고 싶은데... 원서밖에 없어서 난감한 지경^^  기냥 "자본"으로 달려야 하나^^

뱀발) 이 포스팅은 제가 오랜만에 독서하면서, 메모 형식으로 남겨두는 거니, 혹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제 수준이 저열해서 그런거니 용서들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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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넨코프에게 보내는 편지(2)


"프르동씨는 이와함께, 이는 주로 그의 역사에 대한 인식의 결핍에서 기인한 것인데, 인간들이 생산제력을 발전 시키는 한 인간은 그들 상호간에 특정한 관계를 발전시키며 또 이러한 관계방식은 생산제력의 변화와 성장과 더불어 필연적으로 변화될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경제적 제 범주'란 단지 이러한 현실적 제 관계에 대한 추상화에 다름 아니며, 그리고 또 이러한 제 범주들이란 이러한 제 관계가 존속하는 한에 있어서만 진리일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이와같은 제 범주들이 단지 특정한 역사적 발전단계와 특정한 생산제력의 발달에만 타당한 역사적 법칙이아니며 영원한 법칙이라고 보았던 브르주아 경제학자들의 오류속으로 함몰되어 들어갔던 것입니다.

"(프르동의) 독점이란 선한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의 경제적 범주이며, 따라서 신으로부터의 유출이기 때문입니다. 경쟁 또한 선한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 역시 경제적 범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하지 않은것은 독점과 경쟁의 현실(성) 입니다" 그런데 한층 더 나쁜것은 독점과 경쟁이 서로서로를 잠식시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와같은 두가지의 영원한 신의 관념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므로, 프르동씨에게서는 신의 품속안에서는 이러한 두가지 관념의 종합이 현존하며, 또 그종합속에서 독점의 악은 경쟁을 통해 제거되며, 또 경쟁의 악은 독점을 통해 제거되는 것이 의심할 여지없이 자명한 것으로 됩니다.

그러나 잠시 현실의 삶을 살펴보십시요. 그러면 귀하는 우리시대의 경제적 삶에 있어서 경쟁과 독점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종합, 하지만 하나의 정식이 아니라 운동인 종합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독점은 경쟁을 낳고, 경쟁은 독점을 낳습니다. 하지만 이와같은 방정식이 브르주아 경제학자들이 상상하듯이 현재 상황의 제 난점을 제거해주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극복하기 어렵고 또 더 혼란스러운 상황만을 성립시킬 뿐입니다. 따라서 만약 귀하께서 현재의 경제적 제관계가 그것에 기초하고 있는 토대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또 현재의 생산방식을 폐기하고자 한다면 귀하는 단지 경쟁과 독점 및 그들 사이의 적대관계뿐만 아니라 그들의 통일,종합, 그리고 경쟁과 독점사이의 현실적 균형을 표상하고 있는 운동 마저도 폐지 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칼 맑스 협동노동조합(1866)

나의 현재 역사관은 다음과 같이 축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사는 결코 동일하지도 않고, 반복되지도 않는다. 그리고 미래는 결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타산지석으로 삼을 유사한 부분들은 존재한다...

요새 유행중 하나가 바로 "협동조합"인데, 대부분이 장미빛 미래를 얘기한다.
장점만 부각되고, 단점이나 역사적으로 어떤 한계들이 있었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1990년대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는 책이 유행했던 때가 떠 오른다... 나는 그 당시 솔직히 시큰둥했다... 세계화시대에서의 의미가 좀 약해보여서 그랬던것 같다...

유럽의 경제위기속에서 협동조합은 무사할까? 그 구성원들의 타격은 어떠할까? 그리고 협동조합의 핵심이라 할수 있는 '내부의 민주화'는 잘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의문들이 들고, 한국의 협동조합의 현실은 어떠한지 알고 싶어도 쉽게 찾을수 있는 웹문서나 언론기사는 별로 없는것 같다^^

나는 성질이 더러워서 그런가... 무언가 맹목적으로 믿는 것에 본능적인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듯 하다. 그 대상이 맑스주의여도 매한가지다. 맑스와 엥겔스, 그들은 분명히 자신들이 생존했던 당시 또는 멀지 않아 새로운 세상이 온다고 믿었던 것이 확실하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역사적 한계에서 오는 피할수 없는 분명한 오류였다. 욕먹고 손가락질 받을 일인지는 모르나, 현재에 맞게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것은 버린다... 내가 생각하는 과학적 방식이다...

우리시대 역시 우리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한계를 우리의 의지대로 넘어설 수 없다... 물은 보통의 기압에서 100도씨가 되어야 끓기 시작하고 그 때서야 전반적인 기체가 될 토대를 가진다. 증발로 물의 표면이 수증기가 되는 것과는 구별되어져야 한다... 증발로 수증기가 된 물은 여러 요인으로 바로 다시 물로 전환된다...

발췌하는 글은 맑스가 1866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노동자협회에 기고한 내용중에서 협동조합에 관한 부분만 뽑아 본 것이다.



5. 협동노동조합


노동자계급의 자연발생적인 운동들을 결합하고 일반화하는것, 그러나 어떠한 공론적인 제도도 지령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것이 국제노동자협회의 임무이다. 따라서 대회는 특별한 협동조합 제도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일반적인 원칙들을 분명히 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a) 우리는 협동조합운동을 계급적대에 기초한 현재의 사회를 변혁하는 힘들 가운데 하나로 인정한다. 그것의 커다란 공적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예속이라고 하는 빈궁을 낳는 전체적인 현재의 제도가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의 연합의 공화주의적이고 다복한 제도에 의해 대체될수 있음을 실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b) 그러나 협동조합 제도는, 개별임금노예가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구성하는 왜소한 형태에 한정된다면 결코 자본주의 사회를 변혁할 수 없다. 사회적 생산을 자유로운 협동조합노동의 대규모적이고 조화로운 하나의 제도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의 전반적인 조건의 변화가 요구되며,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조직된 힘. 즉 국가권력이 자본가들과 지주들에게서 생산자들 자신에게로 옮겨지지 않고는 실현될 수 없다.

c)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협동조합 상점보다는 협동조합 생산에 종사할 것을 권고한다. 앞의것은 현재의 경제제도의 표면을 손댈뿐이지만 뒤의것은 그 토대를 공격한다.

d) 우리는 모든 협동조합 결사들에게 공동수입의 일부를 기금으로 전화시킬것을 권고한다. 그 기금은 실례와 교훈에 의해, 바꿔 말하면 새로운 협동조합 공장들의 설립을 설명과 설교로 촉진함에 의해 자신의 원리를 선전하는데 사용된다

e) 협동조합 결사가 보통의 중간계급의 주식회사로 타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주주이건 아니건간에 종사하는 모든 노동자가 몫을 똑같이 받아야 한다. 일시적인 조치로서는, 주주가 낮은 율의 이자를 받는 것도 기꺼이 허용할 것이다






노자73장 임위(任爲)

노자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중 하나이다.
지나치게 억지로 무엇인가를 도모하는 것을 삼가하라는 말씀...
마지막의 천망회회 소이불실... 동양사상의 백미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현대의 빠르고 즉각적인 작용-반작용의 모습들...
실재를 이미지가 대체해버린 현실에서...
좀 더 내면과 본질에 대한 성찰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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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73장 임위(任爲)



勇於敢則殺(용어감즉살) 과감함에 빠져 지나치게 용감하면 죽고

勇於不敢則活(용어불감즉활) 과감함에 빠지지 않고 용감하면 산다

此兩者或利或害(차양자혹이혹해) 이두가지는 혹은 이롭기도 하고 혹은 해롭기도 하다.



天之所惡(천지소오), 孰知其故(숙지기고)
하늘이 싫어하는 바를 누가 그 까닭을 알 수 있겠는가.

是以聖人猶難之(시이성인유난지) 이러므로 성인또한 그 점을 어려워 한다



天之道(천지도) 하늘의 도는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불쟁이선승, 불언이선응) 
 다투지 않고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아도 잘 응하며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불소이자래, 천연이선모)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고, 천연히 있으면서도 잘 도모한다.


天網恢恢, 疏而不失(천망회회, 소이불실) 
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 성글게 보이지만, 어느것 하나 빠트리지 않는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중에서(2)

인간의 역사는 지난 1만년경 부터 급진적으로 변화되어왔다.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곡류와 육류들이... 수 만년전부터 전 세계에 고루 존재했던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속에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그 지식과 문화들, 그리고 사람자체가 전파되었던 것이다.

현재도 그러하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현대의 문제점은 식물과 동물의 종자, 생산, 유통자체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유기농업 역시 자본의 논리를 피할수 없는 현실... 경쟁과 집적에서 결국 대량화 기계화를 초래하고... 독점적인 유기농만이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현대의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은 몬산토를 필두로한 유전공학에 의해 변형된 식물과 동물의 생산이다... 핵무기, 핵발전소 문제와 더불어 엄청난 사건들을 야기시킬지 모른다...

사족)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독자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인용한 건지는 모르지만, '자가촉매작용'이 현대물리의 한 분야인 Chaos이론의 프랙탈과 자기반복이론과 유사하다는데 놀라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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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러드 다이아몬드 [총,균,쇠]중에서(2)


"대륙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일단 식량이 생산된후에는 이웃한 수렵민들이 그 결과를 보면서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수렵채집민들이 이웃의 식량생산체계전부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떤 경우에는 그 중에서 몇가지 요소만을 골라서 받아 들였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식량생산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수렵채집민 만으로서만 남아있었다.

유럽동남부인들은 B.C 6000년경부터 서넘아시아의 곡류,콩류,가축을 신속히 받아들였다. 이는 그 지역의 생산성이 비교적 낮아서 경쟁력이 적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랑스남부,스페인, 이탈리아는 식량생산이 서서히 도입되었다

아시아 본토의 집야적인 식량생산이 일본에 도입된 속도도 역시 느리고 점진적이었다

농경을 시작한다는 결정이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다시 말해서 그 이전에는 먹거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식량생산과 수렵채집은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방식'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10000년동안 나타난 지배적인 결과는 대체로 수렵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의 전환이었다. 따라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수렵채집보다 식량생산이 더 커지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주요원인은 네가지로 추려낼수 있는데, 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주로 그것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놓고 벌어진다.

1. 야생먹거리 감소 : 기후변화와 인간사냥꾼들의 기술과 수효증가로 대형 포유류가 대부분 멸종, 거대 조류 멸종

2. 작물화 할 수있는 야생식물이 증가: 생산성 향상.

3. 식량생산에 필요한 기술, 도구,저장시설의 계속된 발전 : 누적화의 토대 마련

4. 인구밀도증가와 식량생산발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인 관계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 식량생산의 도입은 '자가촉매작용(일단 시작된후에는 스스로 촉매작용을 되풀이하여 점점 더 가속화되는 현상)' 이라는 것의 한예가 된다....
식량생산자들은 인구가 훨씬 조밀했기 때문에 굳이 기술, 병원균,직업군인등등 식량생산과 관련된 그밖의 이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순전히 숫자만 가지고도 수렵채집민들을 몰아내거나 몰살시킬수 있었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유전자]중에서(2)




밈과 유전자의 유사점

  이 책의 전체를 통하여 나는 유전자를 의식을 가진 목적 지향적인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유전자는 맹목적인 자연 선택의 작용에 의해 마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인 양 만들어져 있다. 또한 목적 의식을 전제로 한 표현으로 유전자를 설명하는 편이 편리하다.

예컨데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가시의 사본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표현할 경우 실제의 의미는 "우리가 자연계에서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수를 결과적으로 증가시킬 수가 있는 거동을 하는 유전자다."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 목적 지향적으로 일하는 능동적인 존재로서 유전자를 생각하는 것이 편리했던 것처럼 밈에 관해서도 같게 생각하면 편리하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표현을 신비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목적이란 생각은 어느 경우에서나 단순한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전자의 경우 이 은유가 어떻게 유용했었는가는 이미 본 바대로이다.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은유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나서 유전자에 대해 '이기적인'이나 '잔인한'이라든가 하는 형용사까지 쓸 정도이다. 이들 경우와 똑같은 심정으로 이기적인 밈이나 잔인한 밈을 물색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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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탁월한 과학적 사유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목적론적인 세계관, 당위적 세계관은 따지고 보면 이원론적 세계관의 전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이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나, 그 유토피아의 상들은 개인, 집단마다 틀리다. 자신들만의 유토피아 또는 신이 진정한 유토피아,신이라는 오만함의 근거는 무엇일까?

도킨스의 다음 구절을 인용해 본다.

"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으면 아니, 만약 사람이 같은 신을 믿는데 다른 의식을 쓴다면 다만 그것만으로도 맹신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단다, 화형을 한다,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 베이루트 노상에서 사살한다, 벨파스트의 술집에 있는 것을 폭탄으로 날린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이다. 맹신이라는 밈은 몸에 밴 잔인한 방법으로 번식해 가고 있다. 애국적,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상기의 성질은 똑같은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천성이냐 교육이냐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

  여기서 우선 나는 이 책의 성격이 아닌 첫번째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진화에 따른
도덕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말할
따름이다. 나는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
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을 구별  못하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느낌으로, 단순히 그
리고 항상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유전자의 법칙에  기초한 인간 사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싫은 사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됐지만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탄식할지라도 그것
이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주로 흥미롭게 읽도록 의도하였으나 이 책으로부터 도
덕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을 경고로써 읽어 주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
이 개개인이 공통의 이익을 향하여 관대히 비이기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
난 이상, 우리는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칠 것을 시도해 보지 않겠는가. 우리 자신의 이기
적인 유전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가를 이해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적어도 우리는 유
전자의 의도를 뒤집어 볼 기회를, 즉 다른 종이 결코  바라지 못했던 기회를 잡을지도 모르
기 때문이다.
  교육에 관해서 이와 같은 의견을 말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계승되는 특성이 고정되고 변경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덧붙여 말하자면 이 오류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인  것같이 보이나 반드시 우리의 전 생애가
유전자에 따르도록 강제당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확실히  이타주의를 배우는 것은 유전
적으로 이타주의인 것같이 프로그램되어 있는 경우보다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오로지 인간
만이 문화에 의하여 학습하고 전승되어온 영향에 의해서 지배된다. 어떤 사람은 문화야말로
중요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이기적인든 아니든 간에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는 실제로 관
계가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는 사람도있다. 이것은 모두 인간의  속
성에 대한 결정 요인이 "천성이냐 교육이냐"라고 하는 논의에서  어느쪽의 입장을 취하느냐
에 달려 있다. 여기서 나는 이 책의 성격이 아닌 두 번째  사항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 책은 "천성이냐 교육이냐" 논쟁에 있어서 어떤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이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푶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마지막
장에서 제시할 문화에 대한 견해는 여기서 제외된다. 만약  유전자가 현대인의 행동 결정에
는 전혀 무관함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이 점에서 동물계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극히 최근에 인간이 예외로 됐다는 그 규칙에 대하여 아는 것
은 여전히 흥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 종이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만큼 예외적이
아니라면 그 규칙을 배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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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발달하기전 많은 철학과 종교들은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와 목적을 얘기해 왔다. 역사적 유물론 역시 "어떠하다"와 "어떠해야 한다"의 짬뽕중에서 후자의 내용이 많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과거의 '잣대'로 현실을 전혀 해석, 설명하지 못할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떠한가?" 라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겠지만, 이것도 그리 쉬운일은 아닌갑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과거를 확실히 지양할 무언가를 인간들은  찾아낼 것이겟지만, 혼란기를 살아가는 무지렁뱅이의 답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