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ent

레이블이 과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과학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중에서(2)

인간의 역사는 지난 1만년경 부터 급진적으로 변화되어왔다. 우리가 주식으로 삼는 곡류와 육류들이... 수 만년전부터 전 세계에 고루 존재했던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속에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그 지식과 문화들, 그리고 사람자체가 전파되었던 것이다.

현재도 그러하다. 수많은 식물과 동물들이 전 세계로 퍼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현대의 문제점은 식물과 동물의 종자, 생산, 유통자체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다. 유기농업 역시 자본의 논리를 피할수 없는 현실... 경쟁과 집적에서 결국 대량화 기계화를 초래하고... 독점적인 유기농만이 살아남을지도 모른다...

현대의 또 하나의 큰 문제점은 몬산토를 필두로한 유전공학에 의해 변형된 식물과 동물의 생산이다... 핵무기, 핵발전소 문제와 더불어 엄청난 사건들을 야기시킬지 모른다...

사족)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독자적인 생각인지 아니면 인용한 건지는 모르지만, '자가촉매작용'이 현대물리의 한 분야인 Chaos이론의 프랙탈과 자기반복이론과 유사하다는데 놀라움을 느낀다^^


**************************************

제러드 다이아몬드 [총,균,쇠]중에서(2)


"대륙의 어느 한 지점에서 일단 식량이 생산된후에는 이웃한 수렵민들이 그 결과를 보면서 의식적인 선택을 할 수가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수렵채집민들이 이웃의 식량생산체계전부를 그대로 받아들였고 어떤 경우에는 그 중에서 몇가지 요소만을 골라서 받아 들였다. 또 어떤 경우에는 식량생산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수렵채집민 만으로서만 남아있었다.

유럽동남부인들은 B.C 6000년경부터 서넘아시아의 곡류,콩류,가축을 신속히 받아들였다. 이는 그 지역의 생산성이 비교적 낮아서 경쟁력이 적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프랑스남부,스페인, 이탈리아는 식량생산이 서서히 도입되었다

아시아 본토의 집야적인 식량생산이 일본에 도입된 속도도 역시 느리고 점진적이었다

농경을 시작한다는 결정이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졌다고 다시 말해서 그 이전에는 먹거리를 구할 방법이 없었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식량생산과 수렵채집은 서로 경쟁하는 '대안적 방식'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지난 10000년동안 나타난 지배적인 결과는 대체로 수렵채집에서 식량생산으로의 전환이었다. 따라서 이런 의문이 생긴다. 수렵채집보다 식량생산이 더 커지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주요원인은 네가지로 추려낼수 있는데, 학자들 사이의 논쟁은 주로 그것들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놓고 벌어진다.

1. 야생먹거리 감소 : 기후변화와 인간사냥꾼들의 기술과 수효증가로 대형 포유류가 대부분 멸종, 거대 조류 멸종

2. 작물화 할 수있는 야생식물이 증가: 생산성 향상.

3. 식량생산에 필요한 기술, 도구,저장시설의 계속된 발전 : 누적화의 토대 마련

4. 인구밀도증가와 식량생산발원 사이에 존재하는 상호적인 관계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 식량생산의 도입은 '자가촉매작용(일단 시작된후에는 스스로 촉매작용을 되풀이하여 점점 더 가속화되는 현상)' 이라는 것의 한예가 된다....
식량생산자들은 인구가 훨씬 조밀했기 때문에 굳이 기술, 병원균,직업군인등등 식량생산과 관련된 그밖의 이점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순전히 숫자만 가지고도 수렵채집민들을 몰아내거나 몰살시킬수 있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중에서(1)

종교들마다 먹지 말아야할 음식, 특히 육류(포유류)가 있다는 것은 참 재미있다. 무슬림이 돼지고기를 안먹는다길래, 돼지의 원시종을 찾아보니 서남아시아와 중국으로 나오니^^ 더 오리무중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의 글은 참 재미있다. 자연과학적 지식이 충분히 녹아든 적절한 예들에서 "커 그럴수도 있겠구먼^^" 마음속으로 웃음을 지을수 있다.

******************************

"오늘날에도 볼수 있듯이 음식의 선호순위는 사람들의 각각의 생활방식에 부여하는 상대적가치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된다. 19세기 미국서부에서는 소를 기르는 사람, 양을 기르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이 모두 서로를 멸시했다.

마찬가지로 인류역사를 통틀어 농경민들은 언제나 수렵채집민을 원시적이라는 이유로 경멸했고 수렵채집민들은 농경민을 무지하다면서 경멸했으며 목축민들은 둘다 경멸했다. 개인이 먹거리를 어떻게 얻을것인지를 선택하려고 할때마다 그같은 요소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모든 농작물은 야생식물종에서 생겨났다. 그렇다면 야생식물들은 어떻게 농작물이 되었을까? 이 문제가 특히 알쏭달쏭해지는 것은, 많은 농작물이 그렇듯 야생조상이 아몬드처럼 치명적(독이 있다는 말)이거나 맛이 안좋은 경우, 또는 옥수수처럼 농작물과 야생조상의 생김새가 서로 판이하게 다른 경우다. 도대체 어느 혈거인이 식물을 '작물화'할 생각을 했으며 그일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식물의 작물화란 곧 어떤식물을 재배함으로써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인간소비자에게 더 유용하도록 야생조상을 유전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 정의할 수있다."

" 무엇때문에 어떤 식물들은 다른식물들보다 작물화하기가 훨씬 쉽거나 더 매력적으로 보였을까? 어째서 올리브나무는 석기시대의 농경민들에게 굴복했고, 또 왜 떡갈나무는 오늘날의 뛰어난 농경학자들조차 좌절시키고 있는 것일까?"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유전자]중에서(2)




밈과 유전자의 유사점

  이 책의 전체를 통하여 나는 유전자를 의식을 가진 목적 지향적인 존재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유전자는 맹목적인 자연 선택의 작용에 의해 마치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는 존재인 양 만들어져 있다. 또한 목적 의식을 전제로 한 표현으로 유전자를 설명하는 편이 편리하다.

예컨데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가시의 사본 수를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표현할 경우 실제의 의미는 "우리가 자연계에서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유전자는 장래의 유전자 풀 속에서 자기의 수를 결과적으로 증가시킬 수가 있는 거동을 하는 유전자다."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의 생존을 위해 목적 지향적으로 일하는 능동적인 존재로서 유전자를 생각하는 것이 편리했던 것처럼 밈에 관해서도 같게 생각하면 편리하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도 표현을 신비적으로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목적이란 생각은 어느 경우에서나 단순한 은유에 불과하다.

그러나 유전자의 경우 이 은유가 어떻게 유용했었는가는 이미 본 바대로이다.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은유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나서 유전자에 대해 '이기적인'이나 '잔인한'이라든가 하는 형용사까지 쓸 정도이다. 이들 경우와 똑같은 심정으로 이기적인 밈이나 잔인한 밈을 물색할 수가 있을까?

******************

도킨스의 탁월한 과학적 사유방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엇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목적론적인 세계관, 당위적 세계관은 따지고 보면 이원론적 세계관의 전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이 어쩌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나, 그 유토피아의 상들은 개인, 집단마다 틀리다. 자신들만의 유토피아 또는 신이 진정한 유토피아,신이라는 오만함의 근거는 무엇일까?

도킨스의 다음 구절을 인용해 본다.

" 맹신은 어떤 것도 정당화할 수 있다. 만약 사람이 다른 신을 믿고 있으면 아니, 만약 사람이 같은 신을 믿는데 다른 의식을 쓴다면 다만 그것만으로도 맹신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십자가에 매단다, 화형을 한다, 십자군의 검으로 찌른다. 베이루트 노상에서 사살한다, 벨파스트의 술집에 있는 것을 폭탄으로 날린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이다. 맹신이라는 밈은 몸에 밴 잔인한 방법으로 번식해 가고 있다. 애국적, 정치적 맹신이든, 종교적 맹신이든 상기의 성질은 똑같은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천성이냐 교육이냐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 중에서 -

  여기서 우선 나는 이 책의 성격이 아닌 첫번째 사항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진화에 따른
도덕성을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저 사물이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를 말할
따름이다. 나는 우리 인간이 도덕적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는다.  내
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는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을 구별  못하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의 느낌으로, 단순히 그
리고 항상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유전자의 법칙에  기초한 인간 사회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싫은 사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안됐지만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해 탄식할지라도 그것
이 사실임에는 변함이 없다. 이 책은 주로 흥미롭게 읽도록 의도하였으나 이 책으로부터 도
덕을 이끌어 내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을 경고로써 읽어 주기  바란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
이 개개인이 공통의 이익을 향하여 관대히 비이기적으로 노력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기를
원한다면 생물학적 본성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태어
난 이상, 우리는 관대함과 이타주의를 가르칠 것을 시도해 보지 않겠는가. 우리 자신의 이기
적인 유전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가를 이해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적어도 우리는 유
전자의 의도를 뒤집어 볼 기회를, 즉 다른 종이 결코  바라지 못했던 기회를 잡을지도 모르
기 때문이다.
  교육에 관해서 이와 같은 의견을 말하는 것은 유전적으로 계승되는 특성이 고정되고 변경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덧붙여 말하자면 이 오류는  아주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의 유전자는 우리에게 이기적인  것같이 보이나 반드시 우리의 전 생애가
유전자에 따르도록 강제당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확실히  이타주의를 배우는 것은 유전
적으로 이타주의인 것같이 프로그램되어 있는 경우보다는 훨씬 어려울 것이다. 오로지 인간
만이 문화에 의하여 학습하고 전승되어온 영향에 의해서 지배된다. 어떤 사람은 문화야말로
중요하기 때문에 유전자가 이기적인든 아니든 간에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는 실제로 관
계가 없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렇지만은 않다고 하는 사람도있다. 이것은 모두 인간의  속
성에 대한 결정 요인이 "천성이냐 교육이냐"라고 하는 논의에서  어느쪽의 입장을 취하느냐
에 달려 있다. 여기서 나는 이 책의 성격이 아닌 두 번째  사항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이 책은 "천성이냐 교육이냐" 논쟁에 있어서 어떤 입장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나는
이에 대하여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푶명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마지막
장에서 제시할 문화에 대한 견해는 여기서 제외된다. 만약  유전자가 현대인의 행동 결정에
는 전혀 무관함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이 점에서 동물계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알았다고 할지라도 극히 최근에 인간이 예외로 됐다는 그 규칙에 대하여 아는 것
은 여전히 흥미 있는 일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 종이  우리가 생각하고 싶은 만큼 예외적이
아니라면 그 규칙을 배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
과학이 발달하기전 많은 철학과 종교들은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와 목적을 얘기해 왔다. 역사적 유물론 역시 "어떠하다"와 "어떠해야 한다"의 짬뽕중에서 후자의 내용이 많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과거의 '잣대'로 현실을 전혀 해석, 설명하지 못할때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떠한가?" 라고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하겠지만, 이것도 그리 쉬운일은 아닌갑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 과거를 확실히 지양할 무언가를 인간들은  찾아낼 것이겟지만, 혼란기를 살아가는 무지렁뱅이의 답답함...